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닭들의 행성

정말로 우리는 닭들의 행성에 살고 있는 것일 수 있어요.


ⓒ Niklas_hamann


최평순, 다큐프라임 <인류세> 제작팀,  『인류세 : 인간의 시대』, 북하우스(2020)

멀지않은 미래에 우주의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면 지금 시대의 어떤 화석을 발견할까?
현재로서는 '닭 뼈'가 유력한 후보다. 동 시간대에77억 인구가 약 230억 마리의 닭과 함께 살아간다. 사람 한 명당 닭 세 마리 꼴이다. 2008년에는 한국에서 조류독감으로 인해 약 1000만 마리의 식용 닭이 살처분돼 매립되기도 했다. 그럼 그 뼈들은 어떻게 될까? 썩거나 화석이 된다. 닭 뼈는 산소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보통은 잘 썩지만, 매립지 환경은 산소가 별로 없기 때문에 화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. 닭 뼈는지구 전역에서 화석화가 진행 중인데 수적으로 규모가 크고 지리적으로 전 세계에 골고루 분포돼 있어 인류세를 대표할 만한 화석으로 지목된다.
닭이 삼엽충, 암모나이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셈이다. 닭의 입장에서는 황당할 일이다.

“정말로 우리는 닭들의 행성에 살고 있는 것일 수 있어요. 인간의 식욕 때문에 닭이 우리 지구를 탈취했어요.”

육상 동물 중 야생동물은 겨우 3퍼센트의 생물량을 차지한다. 지구에 인간과 인간이 가축화한 동물인 개, 고양이, 닭, 돼지, 소가 넘쳐나는 데 반해 야생동물은 극히 적다. ’97 대 3’의 인간 진영과 야생 진영의 대비. 닭은 그중 가장 개체수가 많다.

230억 마리가 동 시간대에 살아간다. 사람 한 명당 닭 세 마리꼴. 프라이드치킨을 먹고 남긴 뼈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화석이 될 지경에 이르렀다.



ⓒ Wolfgang Mennel

"우리는 얼마나 더 이 새를 변형시킬 수 있을까요?"

인터뷰를 위해 만난 캐리 베넷 박사는 닭 뼈가 인류세의 지표가 될 수 이싸는 증거로 인간의 선별 개량을 지목한다. 먹기 위해 인위적으로 바꾸다 보니 지금의 닭 뼈는 로마시대, 중세시대의 닭 뼈와 달리 다리와 가슴 부분만 비대해졌다. 자연적으로 진화하지 않은 탓에 엄청난 몸무게가 그들의 뼈에 영향을 줘 골절과 뼈 왜곡의 증거가 발견된다.

또한 베넷 박사는 성장률을 언급한다. 2010년대의 닭이 1950년대에 비해 5배나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이다.

"이 새들은 정말 슈퍼 사이즈고 겨우 5~6주 됐을 때 도살당하죠. 아직 청소년기일 때요. 크기가 커서 일찍 도축돼요."

일년에 약 658억 마리의 닭이 도살된다. 드라마틱한 것은 숫자뿐이 아니다. 급속한 성장에 따른 형태의 변화, 뼈의 다공성, 유전자의 변이 등 그들의 생명 작용은 인간에 의해 크게 바뀌어 있었다.